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바스 왕조 (문단 편집) == [[지혜의 집]]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지혜의 집)] [[파일:house-of-wisdom-01.jpg]] '지혜의 집(بيت الحكمة )'은 [[바그다드]]에 위치한 거대한 아카데미이자 황립 대도서관으로 [[하룬 알 라시드]]가 8세기 후반에 제 장서들을 보관하기 위하여 처음 지었다. 이 곳의 가장 대단한 업적은 '''고대 문헌들을 아랍어로 번역해 그대로 보존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랍인들은 이미 4세기 경부터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세계 문화권들의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해 흡수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 도서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위치한 중앙 도서관으로서 고대의 마지막 대도서관으로 꼽힌다. 로마 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유산들이 고스란히 소장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4차 십자군 원정 도중 실수로 모두 불탔다.] 등의 자료들을 아랍어로 번역, 필사했고 유용한 지식이라면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가져왔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도 [[무아위야 1세]]가 [[다마스쿠스]]에서 책을 모으기 시작해 의학, 연금술, 물리학, 수학, 점성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들을 후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식들을 모으길 좋아하던 아랍인들의 지식욕은 [[아바스 왕조]] 시대에 절정을 찍으니 그 소산이 바로 지혜의 집이다. 당시 아바스 왕조가 관용적인 정책을 피면서 그 수도 [[바그다드]]에는 온갖 출신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고, 자연스레 수많은 외국산 기록들이 흘러들어오자[* 아랍인들이 스스로 외국으로 나가 귀중한 고서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알 마문]] 시대에는 천년고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오직 고서 수집만을 목적으로 사절을 파견할 정도였다.] 이 모든 것들을 아랍어로 번역해 '지혜의 집'에 보관해놓았던 것이다. [[그리스어]],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시리아어]] 등 온갖 언어들로 써져서 뿔뿔히 흩어져 있던 책들이 죄다 바그다드에선 아랍어로 번역되어서 대도서관에 비치되었다. 가장 많은 건 의학, 수학, 천문학 책들이었고 [[철학]] 책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고 한다. 지혜의 집은 [[알 마문]] 칼리파의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알 마문은 전쟁의 전리품으로 과학 서적을 황금보다 더 선호했을 정도로 지식욕구가 엄청난 인물이었다. 알 마문은 정기적으로 지혜의 집을 방문하며 학자들과 토론을 나누었고,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지혜의 집에 머무는 현자들에게 직접 질문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세계지도를 작성하라고도 시켰고 [[알마게스트]]에 나오는 환산값들이 정확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으며 [[지구]]의 실제 크기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문의한 적도 있다.[* 원래 알 마문은 매우 호기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도굴해서 처음으로 왕의 방 안까지 들어간 기록을 남긴 사람도 이 알 마문이다.] 바그다드에 최초의 [[천문대]]를 지은 것도 바로 이 알 마문이며 과학 연구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학문 진흥에 압도적인 기여를 했다. 알 마문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 전체에 학계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건 명예로운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고, 사람들이 과시욕에서라도 학자들을 재정적으로 밀어주니 학자들은 생계 걱정없이 오직 연구에만 전념이 가능했다. 번영하던 지혜의 집은 알 마문 사후 조금씩 쇠락했다. 알 마문의 후계자인 [[알 무타심]]과 [[알 와시크]]는 전임자의 선례를 따라 지혜의 집을 잘 보살펴 후원했지만, 알 와시크의 후계자 [[알 무타와킬]]은 지혜의 집에 별 관심이 없었다. [[쿠란]]과 [[하디스]] 경전의 현학적인 해석을 더 선호했던 알 무타와킬은 지혜의 집에서 그리스 학문을 연구하는 걸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며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혜의 집은 칼리파의 암묵적인 방치 속에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가듯이 지혜의 집은 이후에도 300년 가까이 쭉 아랍 무슬림의 지식의 보고나 다름없었는데, 하필이면 1258년 2월 13일 [[몽골 제국]]이 쳐들오면서 말그대로 [[개발살]]난다. 책 따위에 관심이 없던 [[훌라구]]는 도서관의 모든 걸 파괴했다. 훌라구는 말들이 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책을 던져서 다리를 만들었는데, 얼마나 많이 던졌던지 [[티그리스강]]이 책의 잉크로 검게 물들었다고... 게다가 책의 종이로 발을 감쌀 샌들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책들을 찢어 신발로 만들어버렸다고도 한다.[* 그나마 포위전 직전에 40만 권의 책들을 따로 선별해 이란 북서부의 도시 [[마라게]]로 가져가서 겨우 살렸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지혜의 집의 최대 업적은 번역 작업이다. 200년에 걸친 엄청난 대프로젝트 끝에 수많은 고서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부터 시작해서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 [[플로티누스]], [[갈레노스]], [[수슈루타]], 아르야바타,[* 인도 천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천문학에 엄청난 공헌을 남긴 인물이다.] [[브라마굽타]]의 서적들이 죄다 아랍어로 통번역됐다. 그렇다고 번역만 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번역 도중 시대가 바뀌어 사실관계에 어긋나거나 더 나은 기록이 있으면 수정 변경하기도 했고, 주석이나 해석을 달아놓거나 독창적인 논평을 추가했다. 어떤 경우 아예 제목을 바꾸어버리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알마게스트]]. 원래 이름은 '메갈레 신타시스'였다. 번역 작업만 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아랍 학자들은 이렇게 많이 모아둔 기록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연구를 하고 성취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 수학자로 유명한 알콰리즈미는 [[대수학]]의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남겼고, 알 킨디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슬람 철학과 융합해 향후 400년 동안 발전할 이슬람 철학계의 근간을 닦았으며 알 자이스는 [[여우]]와 [[개]], [[늑대]]와 같은 동물들이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진화]]해 왔을 것이라는 학설을 제기했다. 지혜의 집에서 일하던 현자들은 '스스로 연주하는 악기'를 포함해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기계 100여 개가 수록된 '기발한 장치들의 서'를 발간했고, 모함마드 무사는 물리 법칙의 보편성을 지적한 세계 최초의 학자였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많아서 이븐 알 하이삼은 [[광학]] 분야를 연구했고 후나인은 [[안과]] 수술 관련 논문을 남겼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을 입증할 거대한 천문대에서 하늘을 관측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학문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지식들을 탐구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